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음력 8월 무렵 중국 봉천성(奉川省) 통화현(通化縣) 강전자(江甸子)로 이주하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4년 음력 6월 무렵 참의부 총관 송관국(宋觀國)의 권유로 참의부에 가입하고, 제2중대 제3소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통화현 두도구(頭道溝)에서 군사훈련을 받던 중,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1925년 음력 2월 무렵 재향군인으로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9년 4월 신민부(新民府)의 민정위원회측과 참의부의 심용준(沈龍俊) 계열, 정의부(正義府)의 현익철(玄益哲)·고활신(高豁信) 계열이 국민부를 창설하자, 같은 해 음력 8월 상순 무렵 국민부에 가입하였다. 이때 국민부 산하 조선혁명군 전운학(田雲鶴) 부대에 배치되어 봉천성 통화현 금두화락(金斗伙洛)과 쾌당모자(快當帽子) 지역을 중심으로 군자금 모금과 친일단체인 동성귀화한족동향회(東省歸化漢族同鄕會)의 세력 확대를 막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10월 2일 전운학의 명령에 따라 정봉화(鄭奉化)·차학문(車學文)과 함께 통화현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11월 18일 전운학(田雲鶴)이 이끄는 조선혁명군 부대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봉천성 통화현 쾌당모자(快當帽子)로 출동한 일본영사관 통화분관(通化分館) 경찰들과 교전 끝에 신환정(新煥正)과 함께 체포되었다. 1932년 6월 2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을 이유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후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2년 6월 22일 출옥하였다.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29. 11. 19, 12. 10, 1932. 6. 25)
- 조선일보(朝鮮日報)(1929. 12. 8, 1930. 1. 4, 1932. 6. 26)
- 매일신보(每日申報)(1929. 12. 9, 1932. 6. 2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10집 419~4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