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군(光州郡)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 많은 학생들이 구속되었다. 이에 호응하여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동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한창수는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의 경성공립농업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930년 1월 18일 학우인 최일규(崔日圭)로부터 모교에 항일격문을 배포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촉구하자는 제안을 받고 계획에 합류하였다. 최일규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1930년 조선혁명」이란 격문을 작성하였다. 격문에는 “동포여 깨어나라. 강하게 싸워라. 우리의 혁명의 기회를 잃지 마라. 태극의 기치는 우리를 기다린다”라고 기재되었다. 이들은 경성청년동맹 나남지부원(羅南支部員)인 김성만(金成萬)에 의뢰하여 격문 80매를 복사하였다. 19일 한창수는 동지들과 김규창(金奎昌)의 집에서 다시 격문 120매를 등사하였다. 이튿날 배포를 맡은 최일규와 최창한(崔昌漢)이 격문을 경성공립농업학교 교실에 살포하여 동조시위를 촉구하였다. 그 영향으로 1월 25일 경성농업학교 학생들이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30년 2월 27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31년 2월 13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청진지방법원:1930. 2. 27)
- 가출옥(假出獄)의 건(件) 구신(具申)(김천소년형무소장, 1931. 2. 5)
- 가출옥(假出獄) 집행제(執行濟)의 건(件) 보고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3. 2)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1) 제1권 제6호 54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권 1525, 1526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625~6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