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조선에서도 쌀값이 폭등하자 서울에서 구제회를 설치하고 서울 각소에 쌀 염매소를 개설하였다. 1918년 28일 일본인 150∼160명, 조선인 600∼700명의 구매자가 모이자 담당자는 염매권 교부처를 일본인 부와 조선인 부로 구별하여 오전 9시경부터 염매권을 교부하기 시작하였다. 정오경에 일본인 전부와 조선인 과반에게 그날 예정된 미곡 전부가 매진되었다. 구입하지 못한 조선인은 일본인이 전부 구입한 것에 대해 담당자가 조선인에게 박하게 대우한 것이라며 불평을 호소하였다. 순사가 양손을 펼쳐 군중을 학교 문밖으로 몰아낼 때, 김(金)씨 성의 여자가 순사에게 밀쳐 넘어져 잠시 기절하였다. 이에 군중이 흥분하여 문안으로 들어와 고야마 순사를 포위하였다. 종로경찰서장 가미사키(神崎) 경시가 경부와 순사 수십 명을 인솔하고 와서 군중을 진압하였다. 이를 듣고 각지에서 모인 조선인이 천여 명에 달하였다. 군중은 운동장에서 고야마(小山) 순사를 구타하였고, 기왓장과 돌을 던지는 이도 있었다. 최도현(崔導鉉) 등은 현장에서 시위에 참여하였고 고야마 순사를 구타하는 데도 함께 하였다.
1918년 10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죄’로 태 4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18. 10. 3)
- 매일신보(每日申報)(1918. 8. 30, 8. 31, 9. 4, 10. 6)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