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아 쌀값이 폭등하자 서울에 구제회가 설치되고 쌀 염매소가 개설되었다. 구제회는 1918년 8월 쌀 염매소를 종로심상고등소학교 운동장에 개설하여 염매권을 교부하였다. 교부처를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구별하여 일본인들은 대부분 염매권을 받았다. 이에 반해 한국인 상당수가 염매권을 받지 못하자 군중은 교부 담당자가 한국인에게 박하게 대우한 것이라며 불평을 호소하였다.
당시 현장에 나와 있던 순사 고야마(小山)가 쌀이 다 팔렸으니 거듭 퇴장할 것을 명령하고 군중을 밖으로 몰아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 노파가 가슴 부위를 맞고 쓰러지자 노파가 죽었다고 생각한 군중이 문안으로 들어와 고야마 순사를 포위하고 구타하였다. 이때 장두성(張斗成) 등과 함께 솔선하여 투쟁하였다.
1918년 10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죄’로 태 9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18. 10. 3)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매일신보(每日申報)(1918. 8. 30, 31, 9. 4,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