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함경북도 무산군에서는 연사면(延社面) 사지동(四芝洞)에서 3.1운동이 시작되었다. 훈장 남학구(南學九)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4월 1일을 만세운동 거사일로 정하고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거사 당일 남학구를 비롯하여 서당 학생 10여 명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이에 호응하여 주민 수십 명과 연사공립보통학교(延社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이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4월 7일에는 무산면(茂山面)에 있는 무산공립보통학교(茂山公立普通學校) 학생인 남송식(南松植)·이시화(李時和)·이영춘(李永春)·남재훈(南載薰) 등이 주도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이 태극기를 만들어 들고 다니기 시작하자 일본인 교장이 제지를 시도했다. 이러한 교장과 학생들의 충돌을 계기로 더욱 많은 학생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교문을 나가서 거리로 행진하였다. 그러자 4백여 명의 시민들이 학생들과 함께 대오를 만들어 만세운동을 벌였다. 당시 학생이었던 박초길은 이러한 무산군의 4월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3일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771~7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