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만주(滿洲) 용정(龍井)에 위치한 공립(公立) 영신중학교(永信中學校) 2학년을 중퇴하고, 1941년 9월 도쿄로 건너와 사립(私立) 영수학원(英數學院)에 입학해 수학했다.
1941년 11월 도쿄에서 김규엽이 일본인과 한인 간의 차별대우를 철폐해야 하며, 또한 일제의 패망을 이용해 한국과 만주 등지에서 민중들과 함께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홍우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여 함께 활동할 것을 결의했다.
1941년 12월 2차례에 걸쳐 김규엽 등과 회합하고, 중일전쟁의 전황 분석을 통해 일제의 패전을 예측하고, 국내와 만주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해 독립을 달성하기로 결의했다. 이를 위해 서울에 본부, 지방에 지부를 설치해 연락을 계속 유지하는 한편, 유학생들이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여 각 지방을 담당하기로 협의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포착되어 체포되었고 1943년 4월 23일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을 이유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전주지방법원 : 1943. 4. 23)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