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37년 1월 28일 서울에서 경성상공학원 재학 중 ‘조선공산당재건경성준비그룹’에 참여해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조선공산당 재건경성준비그룹은 1936년 10월 이재유(李載裕)와 이관술(李觀述)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항일독립운동 단체이자 노동운동 단체이다. 1937년 3월 15일 경기도 경찰부에서 석방되었다.
1940년 4월 대성학교(大成學校)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철학과에 입학했다. 이때 일본인들의 한인 차별 대우를 목격하고, 한국의 독립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1941년 3월 15일경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규엽과 만나 한인들의 민족의식을 계몽하여 일본인과 한인 간의 차별 대우를 철폐하고, 독립운동에 힘쓸 것을 결의했다. 그해 4월 다시 김규엽과 만나 졸업 후 국내로 돌아가 독립운동에 힘쓸 것을 협의했다.
하지만 이후 체포되어 1943년 4월 23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1943년 11월 25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전주지방법원 : 1943. 4. 23)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사상에 관한 정보철(3)
- 한국민족해방운동사자료집(황태완, 1993) 8집 28~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