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학생들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소식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3월 7일 황해도 금천군의 천도교인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반 주민들의 만세 시위는 4월 1일 백마면의 이상로(李祥老) 등이 주도했다. 4월 3일에는 현내면 송리에서 3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여 헌병주재소까지 진출했다.
이러한 금천군의 만세운동은 4월 8일까지 지속되었다. 황해도 금천군의 주민인 서병선도 이러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그 결과 일제에 붙잡혀 신장헌병주재소에 구금되었다.
1919년 5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언도받고 항소하였다. 1919년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 : 1919. 6. 28)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