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0년 3월 함영우는 강원도 강릉군 주문진(注文津)에서 비밀결사 신리면사회운동협의회를 조직하고, 주문진 지역 책임을 맡았다. 같은 해 4월 조선의 독립과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설립된 주문진독서구락부의 지도 책임자로도 활동했다. 또한 독서구락부의 슬로건으로 ‘굳게 단결하자’, ‘자본주의에 반대하여 소비에트 정부를 지지하자’, ‘제국주의에 반대하자’ 등을 정했다.
1931년 10월 20일에는 주문진에서 비밀결사 사회운동중앙협의회를 조직하고 노동자반 책임을 맡았다. 이후 지역 단체들을 지도하고 적색노동・농민조합 등을 설립했다.
1932년 11월에는 비밀결사 태평양노동조합 강원도 주문진 지부 여자부 책임자로 활동했다. 이후 1933년 4월 중순까지 10여 차례의 회합을 통해 동지 획득을 방안을 협의했다. 또한 같은 해 12월 6일경에는 동료 여공 40명과 함께 임금 인상 파업을 주도했다.
함영우는 1933년 12월의 임금 인상 파업을 주도해 1934년 11월 20일경 체포됐다. 1935년 5월 8일 그를 포함한 7명이 ‘주문진 무명그룹 사건’으로 예심에 회부됐다. 1936년 4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36. 3. 31)
- 동아일보(東亞日報)(1934. 12. 2, 1935. 2. 19, 4. 21, 1935. 5. 12,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