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동하면(東下面)에서 한문 교사로 재직하다가 1920년 대한민국청년단(大韓民國靑年團)에 가입하였다. 대한민국청년단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를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시모(李時模)와 문관진(文觀軫)을 청년단에 가입시키는 등 조직 확대에 매진했다. 이들은 같은 해 음력 4~5월 용천군 읍동면(邑東面)‧동하면‧내중면(內中面)‧양하면(楊下面)에서 여러 차례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 과정에서 군자금 모집 목적을 독립운동 지원으로 분명히 밝혔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2월 2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항소하여 1921년 6월 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3. 3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14집 4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