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함경북도 길주군에는 천도교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확대되어 1919년 3월 11일 길성면(吉城面) 길북동(吉北洞)에서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3월 12일부터 길주 읍내·덕산면(德山面)·동해면(東海面) 등에서 독립만세와 횃불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15일에는 길주 읍내·동해면 용원동·양사면(暘社面) 양흥동(暘興洞)·웅평면 남양동에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같은 시기 중국 간도(間島) 연길현(延吉縣)에서 활동하던 웅평면(雄坪面) 용천동(龍川洞)의 마하룡(馬河龍)이 귀국하여 웅평면에서의 독립운동을 계획했다. 마하룡은 남양동(南陽洞)의 최병진(崔炳鎭)을 만나고 이어서 허용(許榕)·안상우(安相宇)·안상용(安湘容) 등과 회합을 가졌다. 남양동 동쪽 이웃 마을인 남일동(南一洞)으로 건너가 김병한(金秉漢), 허길(許吉) 등과도 협의했다.
이들은 독립만세 운동을 결의하고 주민들에게 참가를 권유했다. 3월 15일 오후 4시경 남양동 웅평면사무소 앞에는 약 300명의 군중들이 집결했다. 최병진 등 주도 인사들은 군중들을 지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연호했다. 여기에 면장 최우룡(崔禹龍), 면서기 양창규(梁昌奎) 등도 참가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게 했다.
최병진은 웅평면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길주헌병분대 헌병에 체포되어 신문조사를 받은 후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6월 7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선고받는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19. 7. 28)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10. 9)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760~76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