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3월 12일 황해도 운율군 장연(長連) 장날에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이후 1920년 음력 11월에는 황해도 은율군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기 위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가 체포됐다.
이후 1923년 7월 3일 장연읍(長連邑)에서는 청년구락부(靑年俱樂部)가 조직됐다. 백준열은 이에 참여해 문예부장을 맡았다. 또한 1924년 2월 중순부터 장연읍에서 부인야학(婦人夜學)을 개설해 50여 명의 학생을 모집했다. 1925년 3월 11일 장연 등 다섯 곳 청년단체의 연합으로 해서청년연합준비회(海西靑年聯合準備會)의 헌장작성위원(憲章作成委員)에 선임됐다. 같은 해 6월에는 시대일보(時代日報) 장연지국(長淵支局) 기자를 지냈으며, 1926년에는 잡지 개벽사(開闢社)가 신설한 해서지부(海西支部) 지사장을 맡았다.
1927년 8월 7일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서면대회(書面大會)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같은 해 가을경 백준열은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공산사회 실현을 목표로 설립된 비밀결사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했다. 백준열은 이 단체에서 황해도 간부로 활동하다 체포됐다. 1932년 11월부터는 동아일보사 장연지국 기자를 지냈다.
백준열은 1922년 3월 14일 해주지방법원에서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폭발취제규칙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고려공산청년회에서 활동하다 1930년 11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옥고를 치르고 1932년 9월 4일 출옥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23. 7. 13, 1925. 3. 17, 3. 31, 9. 22, 1926. 2. 23)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1) 제1권 제5호 28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