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20년에 전국 각지에서는 만세시위를 촉구하는 격문을 배부하는 등 1919년 3.1운동의 열기를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전성구는 1920년 8월 중 미국 상하의원단이 조선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민족의 독립희망을 전달하고자 했다.
1920년 8월 21일에는 상해임시정부 결사대(決死隊) 일행(一行)이란 명의로 “이번에 미국의원단 제씨(諸氏)가 조선민족의 독립 열망 정도를 탐지하고 한국독립을 원조하기 위하여 8월 24일 입경(入京)함으로 우리 천만 동포는 일제히 분기(奮起)하여 이 일행을 환영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했다.
전성구는 문서를 인쇄하고자 8월 22일 동아일보 원산지국 내에서 김장석(金章錫)에게 전달했다. 또한 함경남도 덕원군(德源郡) 현면(縣面)에 위치한 취성학교(聚星學校)에서 등사판을 사용하여 약 180매 인쇄했다. 다음날인 전성구는 8월 23일 문서 배부를 의뢰받고 2~30매 수취해서 원산부 일대의 조선인 가옥에 배부했다.
전성구는 독립의지를 알리고자 작성한 문서를 배부하다 체포됐다. 이후 1920년 12월 23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판결문(함흥지방법원 원산지청・함흥지방법원:1920. 12. 2 ・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