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31년 중국 만주에서 귀국한 한전종(韓琠鍾)은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의 재건을 계획하고 이를 위해 학교 독서회(讀書會), 혁명적 농민조합, 소년야학회(少年夜學會) 등의 세포조직을 결성하고자 했다. 그 결과 보성고보, 양정고보, 근화여학교 등에 독서회가 조직되었다. 당시 근화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는 교사인 장보라(張保羅)의 지도를 받아 김경훈(金庚訓) 등과 근화여학교에 독서회를 조직했다.
1931년 7월 일본의 흉계로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이 발생하자 홍병모(洪炳模) 등은 만보산사건의 진상과 일제의 침략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격문을 제작하여 각 학교에 살포할 것을 계획했다. 또한 각 학교의 연합 시위운동도 추진되었다.
정남이는 7월 8일 근화여학교의 장보라·송재후(宋在厚) 등과 시위운동 계획을 협의했다. 이들은 7월 10일 조회 후 학생들을 이끌고 안국동으로 진출하여 시위에 참가하기로 했다. 그는 격문 살포, 송재후 등은 동맹휴학 준비 등 각자 역할을 나누었다. 그는 7월 9일 홍병모로부터 격문 60여 매를 전달받아 장보라를 통해 근화여학교에 살포했다. 각 학교의 연합시위운동은 연락 불충분으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였다. 1932년 5월 31일 체포되었으나 6월 16일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 6. 18, 1933. 8. 23. 8. 24)
- 사상휘보(思想彙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4) 제1호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