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19년 3월 초 유봉진(劉鳳鎭)이 연희전문학교 학생 황도문(黃道文)을 통해 서울의 독립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고, 선두리(船頭里) 등의 기독교 교인들과 논의하여 독립만세를 계획하였다. 3월 9일 길직리 교회에서 유봉진․황도문 등이 회합하여 3월 18일 강화읍내 장날에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정하였다. 이에 격문을 작성하여 인쇄․배포하였고 태극기를 만들며 다양한 경로로 만세운동 계획을 전파하였다.
3월 18일 오후 2시 강화읍내 시장에서 군중들이 ‘조선독립’ 깃발을 앞세우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 개시 후 공자묘에 집결한 군중이 1만 명 이상에 이르렀다. 이들은 강화경찰서(江華警察署)로 몰려가 경찰에 검거된 구금자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다시 시장으로 이동하여 밤 11시까지 만세를 부르고 해산하였다.
길상면 선두리에 거주하던 신병순은 강화군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6일 강화경찰서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3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156~15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