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19년 3월 초 홍성군 광천면(廣川面)에 독립선언에 관한 유인물이 전달되었다.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게된 주민들은 군내의 각 면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4월 1일부터 9일까지 금마면・홍북면(洪北面)・홍주면(洪州面) 등지에서 만세시위와 봉화 시위가 일어났다.
금마면에서는 민영갑(閔泳甲)・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 등이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가설극장이 설치되어 공연이 열리고 있으므로, 이를 기회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이 4월 1일 밤 8시 공연의 흥이 오르는 때에 독립만세를 외치자 연극을 관람하던 20~30여 명이 함께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4월 4일에는 면내 주민들이 산상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출동한 일제 군경의 발포로 사상자가 생기며 해산되었다.
금마면 부평리에 거주하던 임용학은 금마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8일 홍성경찰서(洪城警察署)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3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33~1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