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아산 지역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2일 온양(溫陽)시장에서 학생들과 주민들이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작되었다. 이어서 영인면 등지로 확산되었으며 3월 31일부터 4월 3일까지 배방면(排芳面)・염치면(鹽峙面) 등지에서 횃불 봉화 시위가 전개되었다.
영인면에서는 3월 14일 오후 1시 아산리(牙山里) 아산시장에서 인주면(仁州面) 공세리(貢稅里) 천주교 신자 약 15명이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주도자들은 출동한 아산헌병주재소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그러나 오후 6시 학생과 주민 약 200여 명이 읍내로 진입하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를 제지하고자 온천리(溫泉里) 헌병분견소와 아산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출동하여 만세운동 참여자들을 체포하였다.
4월 2일과 3일 밤 8시에 영인산(靈仁山)에서 횃불을 올리자 기독교인들의 주동으로 아산리에 모인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영인면 신운리(新雲里)에 거주하던 이요안은 영인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5일 온천리헌병분견소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6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50~1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