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청양군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3일부터 9일까지 정산면・목면(木面)・화성면(化城面) 등지에서 만세시위와 봉화 시위로 전개되었다.
정산면에서는 4월 5일 오전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 등이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정산시장의 100여 명의 군중과 만세시위를 벌였다. 정산헌병주재소(定山憲兵駐在所) 헌병들이 출동하여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30명을 체포하였다. 이에 700여 명의 군중들은 헌병들에게 막대기 등을 휘두르며 구금자 방면을 요구하였다. 이를 제지하는 헌병들이 군중을 향해 발포하여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했으며 17명이 체포되었다.
4월 6일 광생리(光生里) 등 3개 마을에서는 약 500여 명이 결집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4월 7일 오후 1시에 약 50여 명이 모인 만세시위가 있었다. 이날 밤 9시에도 와촌리(瓦村里) 등의 주민 150명이 인근 산상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봉화 시위를 전개하였다.
와촌리에 거주하던 이승희는 정산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7일 청양헌병분견소(靑陽憲兵分遣所)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7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43면
- 「청양지역 3.1운동의 참가자 연구」(김진호,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1) 충청문화연구 제6집 36~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