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아산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2일 온양공립보통학교(溫陽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이 동맹 휴교를 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작되었다. 이어 3월 31일부터 4월 3일까지 배방면(排芳面)・염치면(鹽峙面)・탕정면(湯井面)・신창면(新昌面)・둔포면(頓浦面) 등지에서 봉화 시위가 전개되었으며 아산 군내 12개 면으로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선장면에서는 정수길(丁壽吉)・김천봉(金千鳳)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장날인 4월 4일 선장시장에서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에 약 200여 명의 군중들이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선장헌병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오후 3시 주재소에 도착한 군중들은 내부로 들어가 유리창에 투석하고 공격하였다. 이에 온양에서 출동한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헌병이 총기를 발포하며 군중을 해산시켰다.
돈포리(頓浦里)에 거주하던 이수량은 선장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온천리(溫泉里) 헌병분견소로 압송되었다.
1919년 4월 20일 온천리헌병분견소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4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내지(在內地)(8)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