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안성군에서는 3월 11일 오전 양성공립보통학교(陽城公立普通學校) 교정에서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3월 28일부터 4월 3일까지 원곡면(元谷面)‧읍내면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4월 1일 밤 8시 원곡면사무소에 약 1,0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같은 날 밤 9시에 양성면에서는 각 마을에서 만세시위를 진행하고 동항리의 양성주재소에 약 1,000여 명이 집결하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밤 10시에 만세시위를 끝내고 해산하려던 양성면 주민들이 원곡면에서 온 주민 1,000여 명과 합세하여 만세시위를 다시 벌였다. 약 2,000여 명으로 늘어난 군중은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방화하여 전소시켰다. 이러한 만세시위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으며 원곡면 주민들은 되돌아가 원곡면사무소를 전소시켰다. 이후 일본군과 경찰이 파견되어 주민 수백 명을 만세시위 연루자로 체포하였다. 양성면 명목리(名木里)에 거주하던 이교정은 양성면과 원곡면 주민이 연합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0일 안성경찰서(安城警察署)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6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동아일보(東亞日報)(1988. 3. 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175~17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