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초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溫水里)의 유봉진(劉鳳鎭)은 연희전문학교 학생 황도문(黃道文)에게 서울의 3.1운동 상황을 전해 듣고 길직리, 온수리 등의 기독교 신자들과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했다. 3월 9일 오후 3시경 길직리 교회에 유봉진·황도문·이진형(李鎭亨) 목사 이외에 장명순(張明淳)·장동원(張東元)·장덕기(張德基) 등이 참석했다.
이때 조종환(趙鍾桓)이 서울의 3.1운동 상황을 전하며 만세시위를 실행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장윤백(張允伯)이 일어서서 ‘강화에서 만세를 부르려면 기일을 정해야 한다. 그 날짜는 장날이라야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다’라고 하자 참석자 모두가 찬성했다. 이진형이 강화에 가서 「독립선언서」 도착을 확인한 후에 시위 일자를 정하기로 하고 해산했다.
회합을 마친 후 장흥환(張興煥) 집 객실에 한춘근(韓春根)과 더불어 유희철(劉熙哲)·황유부(黃有富)·염성오(廉成五)·조종렬(趙鍾烈) 등이 모였다. 참석자들이 만세시위 참여를 결의하자. 한춘근이 2원(円)을 기부하고 황유부·장윤백·염성오(廉成五)·유봉진 등이 출금(出金)하기로 했다. 이후의 모금 활동은 황유부에게 위탁하고 조종환은 모금액을 가지고 3월 10일 서울로 출발했다.
이처럼 한춘근은 강화 독립만세운동과 학생 원조 모금에 참가하여 경찰에게 체포되어 강화경찰서로 압송됐다. 1919년 4월 7일 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경찰서장에게 태 60도의 즉결처분을 받는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심법원:1919. 12. 18)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20. 3. 12)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강화경찰서:1919. 4. 7)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6) 제26권 248, 275~276, 278~2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