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황두일 의병장은 1908년 음력 2월 경 심남일부대(沈南一部隊)의 기군장(起軍將) 이덕삼(李德三) 의병부대의 중군(中軍)으로 전라남도 나주(羅州)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후 황두일 의병장은 송병운(宋炳雲) 등 약 50명의 독립의병부대를 이끌고 활동하였다.
김공서는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9년 8월 30일 황두일 의병장이 이끄는 송병준 이하 10명의 의병과 함께 전라남도 해남군을 중심으로 의병전쟁을 수행하던 중 해남수비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9월 25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폭동죄(暴動罪)’로 태(笞) 80도(度)를 받았다. 1910년 대사령(大赦令)으로 형 집행을 면제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광주지방법원:1909. 9. 25)
-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국사편찬위원회, 1986) 제15권, 334~3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