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07년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당했다. 의병전쟁의 양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황두일은 1908년 음력 2월 경 심남일부대(沈南一部隊)의 기군장(起軍將) 이덕삼(李德三) 의병부대의 중군(中軍)에 소속되었다. 이후 그는 전라남도 나주(羅州)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황두일 의병장은 송병운(宋炳雲)·강자선(姜自仙) 등 약 50명의 의병을 이끌고 의병전쟁을 수행해 갔다.
강자연은 황두일의진에 속하여 복군(卜軍)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 8월 30일 밤 황두일 의병장이 이끄는 약 10여 명의 의병과 함께 활동하던 중 해남수비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9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폭동죄(暴動罪)’로 태(笞) 8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광주지방재판소:1909. 9. 25)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6) 3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