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경상남도(慶尙南道) 창녕군(昌寧郡) 남지면(南旨面)에서 남지공립보통학교(南旨公立普通學校)를 졸업했다. 1935년 10월 이래 이종필(李鍾弼) 등을 만나 ‘조선 독립’과 사회주의 이론을 배웠다. 1936년 12월경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국내로 들어와 경기도(京畿道) 진위군(振威郡) 평택역(平澤驛) 앞에서 카페 여급으로 일했다.
1937년 9월 10~10월 4일 박진홍(朴鎭洪)으로부터 사회주의 운동 실천 방안을 지도받고 연락원으로 활동했다. 10월 4일 박진홍과 조병목(趙秉穆)을 연결시켜 주었다. 당시 박진홍은 과거 ‘이재유(李載裕) 그룹’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관술(李觀述) 등과 회합하며 비밀결사 ‘조선공산당재건(朝鮮共産黨再建) 경성준비그룹’의 재건을 위해 동지를 규합하고 있었다.
박진홍 등의 동향을 탐지하고 있던 경기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 소속 경찰들은 1937년 11월 중순 이후 ‘조선공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 재건 관련자 10명을 체포했다. 남남덕도 이 과정에서 체포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녀는 기소유예(起訴猶豫)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37. 12. 5, 1938. 6. 23)
- 이재유 연구(김경일, 1993) 25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