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5년 9월경부터 전라남도 광양군 골약면(骨若面) 태인리(太仁里)에서 김태현(金台炫) 등과 함께 태금학술강습소(太金學術講習所)를 열고 밤낮으로 남녀 학생 50여 명에게 무료 강습을 실시하였다. 1926년 1월 당시 골약면 태인리의 광인소년단(光仁少年團)의 집행위원으로서 총무부를 맡아 활동하였다.
1927년 12월경 최한원은 「강령(綱領)」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만들었다. 최영근(崔永根)과 함께 광양군 진월면(津月面) 선소리(船所里) 광양해태조합(光陽海苔組合) 사무소의 등사기로 약 70통을 인쇄했다. 이를 김상찬(金相贊) 등에게 배포하였다. 문서의 내용은 “비밀재판, 고문제도와 불법감금을 사실상 폐지하고, 각종 학교의 모든 교수 용어로 한국어 사용제도를 확립하고, 한국인 교사 채용 확립” 등 일본의 식민통치를 비판한 것이다.
최한원은 1928년 7월경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8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으로 금고(禁錮)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1930년 7월 10일 골약면 태인리에 창립된 사립보통학교기성회(私立普通學校期成會)에서 서기를 맡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7. 27).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1928.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