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7년 경상남도 통영군의 세력가이자 변호사, 도평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던 김기정이 경상남도평의회(慶尙南道評議會) 회의석상에서 ‘조선인의 보통교육’을 부인하는 동시에 한국 청년을 모욕하고 ‘조선어 통역 철폐’를 주창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러한 사실이 통영사회에 알려지자, 1927년 3월경 통영군 내 사회단체 회원인 청년들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여 김기정을 징토(懲討)했다. 김기정이 이들을 고소하여 박봉빈(朴奉杉) 외 10명의 청년들이 통영경찰서에 검속되었고, 이에 분개하여 청년들은 단식동맹(斷食同盟)까지 결행하며 맞섰다.
체포된 청년들의 가족과 통영사회 내 유지들은 민정회(民正會)를 조직하고 시민대회를 열려고 했으나 경찰의 금지를 당하였다. 이에 1927년 5월 12일 밤 가족과 시민들은 통영경찰서와 김기정의 집을 에워싸고 시위를 벌였다. 13일 밤에는 수천의 군중이 통영경찰서와 김기정의 집을 습격하기에 이르렀다. 강명순은 동료 기생 주선이(朱先伊, 朱順伊) 등과 함께 이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통영경찰서에서 인근에 지원 요청했으며, 100여 명의 무장 경관이 시위 군중을 진압했다. 1927년 5월 14일 주동자로 지목된 40여 명이 체포되었다. 강명순도 주선이와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강명순 등 22명은 6월 5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馬山支廳)으로 넘겨져 반년 이상 예심(豫審)을 거쳤다. 1927년 12월 7일 징역 3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같은 달 14일 마산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27. 5. 31, 11. 24, 12. 6, 12. 9, 12. 19)
- 조선일보(朝鮮日報)(1927. 11. 24,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