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56888
성명
한자 金承鐸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19 훈격 건국포장
1920년 12월 경남 하동에서 제령7호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10월을 받음.
1923년 2월 진주노동공제회 적량지회 발기인, 1924년 하동기근구제회 모집부원으로 활동하고, 1925년 4월 서울에서 조선기자대회에 사상운동 하동지국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동년 11월 하동노농연합회(河東勞農聯合會)하동청년연맹(河東靑年聯盟) 집행위원으로 활동함.
1926년 1월 하동기자단 상무위원, 동년 3월 하동노농회(河東勞農會) 집행위원, 6월 순종(純宗)인산(因山)을 앞두고 검속되었다가 방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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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일제의 침탈을 비판하다가 체포되었다. 1920년 12월 22일 부산지방법원(釜山地方法院) 진주지청(晉州支廳)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같은 달 25일 공소(控所)를 제기했지만 기각되었다. 대구형무소(大邱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고 같은 해 12월 1일 출옥했다.

이후 경상남도(慶尙南道) 하동군(河東郡)에서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1923년 2월 4일 심상익(沈相翼) 등과 함께 진주노동공제회(晋州勞動共濟會) 적량지회(赤良支會)를 설립하였다.

1924년 4월 8일 동회(同會)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소작운동(小作運動)에 대해 강연하였다. 같은 해 11월 22일 하동군 상무회관(商務會館)에서 각 단체대표자들과 함께 하동기근구제회(河東饑饉救濟會)를 설립하고 모집부(募集部)에서 활동했다.

1925년 4월 서울에서 개최된 조선기자대회(朝鮮記者大會)에 『사상운동(思想運動)』 하동지국을 대표하여 참석했다. 11월 15일 하동노농연합회(河東勞農聯合會)의 집행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했다. 같은 달 26일 하동청년회(河東靑年會)와 적량청년회(赤良靑年會)가 연합하여 하동청년연맹(河東靑年聯盟)이 창립되자 그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2월부터 『동아일보(東亞日報)』 하동지국 기자로 활동했다.

1926년 1월 1일 하동기자단(河東記者團)을 창립하고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6월 순종(純宗)의 인산일(因山日)을 앞두고 하동경찰서(河東警察署) 검속되었다가 방면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23. 2. 17, 1924. 9. 24, 1925. 12. 23, 1926. 1. 6, 1926. 3. 3, 4. 28, 6. 14)
  • 시대일보時代日報(1924. 4. 13, 11. 27, 1925. 11. 18, 11. 30, 1926. 1. 5, 1. 10, 1. 14, 3. 1).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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