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31년 3월 20일 경기도 양평군 양평농민조합(楊平農民組合) 준비위원장으로 선임되어 농민조합 결성을 주도했다. 4월 5일 준비위원회를 열고 창립대회를 4월 16일에 개최하고자 했지만, 양평경찰서(楊平警察署)에서는 사전 금지 명령을 내렸다. 교섭위원으로 선정된 이정환(李正煥) 등과 함께 양평경찰서 고등계(高等係)를 방문했다가 검속되었다. 같은 달 말경에 석방되었다.
1932년 3월 중순경 변홍균 등과 회합하여 양평농민조합을 비밀결사 형태로 조직하기로 하고 ‘양평농민조합 재건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때 준비위원장 및 용문지부(龍門支部) 조직책임을 맡아 활동했다. 이후 서울에서 활동하던 ‘이재유(李載裕) 그룹’과 연결되어 그 지도 아래 양평농민조합을 비합법적인 혁명적 농민조합으로 결성하기로 했다.
1933년 7월 중순경 이정환 등과 회합하여 ‘양평적색농민조합 준비위원회’를 개최했다. 조직부 책임 및 갈산지부(葛山地部) 책임을 맡아 홍기동(洪基東)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양평의 농민조합운동과 경기도 여주군(驪州郡)의 농민조합운동을 연합하는 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러시아혁명 기념일 투쟁, 반전(反戰) 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1934년 2월 9일 변홍대 등과 함께 경기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에 체포되었다. 7월 31일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가, 불기소(不起訴)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피의자신문조서(被疑者訊問調書)(경성지방법원 검사국:1934. 7. 31)
- 한국공산주의운동사(김준엽·김창순, 1980) 자료편II, 720~722, 731, 761~76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