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6일 김정식 등이 용강군 해운면 용반(龍磻) 1리 서당에 있던 태극기 판목을 이용하여 소형 태극기 수십 개를 제작하고 학생 수십 명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 군중은 면소재인 온정리(溫井里)로 향했다. 온정리 장날 시장에 나온 많은 사람들이 시위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들은 온정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갔다. 헌병들이 총을 쏘자 부근 산 위로 철수하였다. 그날 밤 시위대가 온정주재소와 금곡면 광량만경찰서를 습격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이에 일본 군경이 6일과 7일 해운면 일대에서 조선인들에게 총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6일 오후 6시부터 일병리에서는 온정리 만세 시위에 가담했던 사람 등 주민 수십 명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일병리 서당에 모여 훈장 이일승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오후 11시경 보병 6명이 경찰과 함께 들이닥쳐 일병리 서당을 포위하고 총을 쏘아 일병리에 거주하던 손건주와 김태황이 순국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6. 7)
- 용강군지(龍岡郡志)(평안남도 용강군민회, 1988) 5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