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황혜수는 1877년 4월 4일 평안북도(平安北道) 의주군(義州郡) 위화면(威化面) 상단리(上端里)에서 출생하였다. 서울 경신여학교를 졸업하고, 선천·부산 등지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1911년 6월 23일 코리아 선편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황혜수는 펄쓰 중학교에서 수학했다. ‘상항한인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 여학생 78명에게 국어를 가르쳤다. 1913년 9월 7일 ‘상항한인교회’ 청년회에서 학문국 국장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12월 28일에는 청년회에서 개최하는 연설회에서 연설을 하였다.
국내에서 3.1운동이 발발하였다는 소식이 미주지역에도 알려졌다. 미국 동부에 있는 아덴스 대학에 재학중이던 황혜수는 4월 19일 아덴스 대학 학생회에서 일본의 불의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그녀의 연설을 들은 미국 학생들은 “대통령이 한국을 호위하여 그 독립을 원조하라”는 전보를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윌슨 대통령에서 보냈다. 황혜수는 여러 곳을 다니며 독립운동의 상황을 알리는 연설을 했다.
황혜수는 1919년 5월 27일 아덴스 대학 문과를 졸업하고, 9월 하와이 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서기로 임명되었다. 당시 하와이 여성계에도 분파가 있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 ‘마더스 클럽’을 조직하여 매월 한 차례의 모임을 갖게 하였다. 1928년 2월 26일 황혜수를 비롯한 29명의 하와이 한인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은 독립운동 진영 통합을 위한 ‘대한민족통일촉성회’를 조직하기로 의결하였다. 대한민족통일촉성회의 설립목적은 “대한 민족의 통일을 촉성하여 독립운동의 단일기관을 창설함에 재함”이라고 하였다.
1928년 8월 9일 하와이에서 범태평양부인대의회가 개최되었다. 이때 황혜수는 200여명의 각국 대표와 함께 10여 일 동안 중요한 문제를 토론하였다.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황혜수는 한인 2세들의 여자단체인 ‘형제클럽’을 결성하여 한국문화와 예술을 배양하게 하였다. 1932년 3월에는 하와이 한인 3세들을 위해 ‘해당화클럽’을 조직하여 한국의 문화·예술·풍속을 가르쳤다.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습한 이후 하와이 치안부에서는 한인반 집행위원회를 조직하여 국방후원을 하게 했다. 한인반 집행위원에는 황혜수를 포함한 이원순·최창덕 등이 선출되었다. 위원장에는 전경무, 서기에는 손노듸가 임명되었다. 황혜수는 1914년부터 1945년까지 각종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1911. 7. 5, 1912. 3. 8, 1913. 8. 1, 9. 12, 10. 24, 1914. 1. 1, 3. 5, 4. 30, 7. 26, 1919. 5. 1, 5. 20, 9. 9, 1923. 11. 29, 1924. 5. 29, 1924. 7. 17, 1924. 8. 7, 1924. 8. 28, 1928. 4. 19, 8. 16, 9. 6)
- 국민보(1937. 2. 3, 2. 23, 3. 3, 3. 17, 5. 5, 9. 15, 10. 27, 1938. 3. 2, 9. 28, 1942. 7. 8, 12. 16, 1943. 5. 12, 9. 1).
- 사진: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