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현호옥은 1913년 5월 5일 제주도(濟州島) 정의면(旌義面) 성산리(城山里)에서 출생하였다. 그녀는 제주도의 성산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낮에는 자전거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밤에는 중학교 야간부를 다녔다고 한다.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공장 직공으로 생활하면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상황을 보고 노동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930년대 오사카에는 있는 고무·피혁, 기타 화학공장 직공은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따라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화학노동조합에는 한국인 조합원이 많았다. 현호옥도 화학노동조합 일본화학 관서지부(關西支部) 오사카지구 동북구(東北區) 남해고무 공장분회(工場分會)에 소속되어 있었다. 일본화학 관서지부는 1933년 7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검거로 인해 조직이 궤멸되어 있었다. 그래서 1934년 2월 오사카부(大阪府) 동성구에 있는 고무공장 한국인 노동자를 중심으로 일본화학 관서지부를 재건하는 준비회가 결성되었다. 이 준비회에는 성야(星野)를 책임자로 하여, 조직부 한국인 좌야(佐藤)·육복용(陸福用), 문서배부계(文書配布係) 성철성(成哲星), 부인부(婦人部) 현호옥 등이 책임을 맡아 조직을 재건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특히, 메이데이 당일에 즈음해서는 비합법 메이데이를 감행할 것을 계획하고 준비를 하던 중, 현호옥은 1934년 4월 11일 육복용·성철성 등 19명과 함께 검거되고 말았다.
현호옥은 1934년 7월 20일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계속 미결 상태로 있었다. 1935년 10월 26일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편, 1976) 제3권 221, 834, 90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