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56753
성명
한자 金노디
이명 金노듸, 孫노디, 孫노듸, 김해김, Nodie Dora Kimhaikim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미주방면 포상년도 2021 훈격 애국장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제1차 한인회의에 참석하여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고 일본국민에게 보내는 결의문의 기초위원으로 활동함.
1921년경부터 미국 오하이오 오벌린대학교 재학 중 미국 각지를 돌며 한국의 사정과 독립에 대해 선전하는 활동을 함.
1926년부터 미국 하와이에서 대한부인구제회 학무(1926~1927), 외교(1927~1928, 1935~1938, 1942~1944), 중앙부장(1929~1931, 1939~1940, 1945), 재무(1935~1938) 등으로 활동함.
1930년 범태평양부인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고 1940년 한인연합위원 위원, 1942년 해외한족연합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함.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898년 10월 29일 황해도(黃海道) 곡산군(谷山郡)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미국 오하이오주 오벌린대학(Oberlin College)에 재학 중인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대표자회의(First Korean Congress)에 참석하였다. 이 회의에서 「일본 국민에게 보낼 결의문」 기초위원으로 임명되었고, 한국 여성들이 일제 식민 통치하에 겪은 고난과 해방과 자유를 위하여 이어간 투쟁에 대해 연설하였다.

1919년 10월부터 미국 전역을 다니며 한국 독립을 위한 연설을 하였다. 1920년 5월 23일에는 필라델피아에서 「한국 부녀와 청년 여자들의 순절」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매주 1~2차례 혹은 3~4차례씩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한국의 사정과 일제의 반인도적인 행위를 미국 사회에 알렸다.

1921년 3월 1일 ‘3.1독립선언’을 경축하기 위해 오벌린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한인 여학생 5~6명이 모임을 가졌는데, 이 모임에는 오벌린대학 총장 킹 박사가 참여하여 한국이 독립될 것이라고 연설했다. 같은 해 6월 1일에는 오벌린에서 한인구제회 지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오벌린대학을 졸업한 후 1923년부터 1935년까지 하와이 한인기독학원의 여학생 감독, 1930년 9월부터는 교감, 1935년에는 교장으로 교육사업에 매진했다. 1924년 8월 뉴욕 한인교회에서 임시공동회를 소집하여 한국의 정세에 대해 연설하고, 북미 각지를 다니며 한인기독학원을 위한 기부금 2,000달러를 모금하였다.

1930년 8월 9일부터 23일까지 제2회 범태평양부인대회(汎太平洋婦人大會)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되었는데, 김노디는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41년 4월 재미 한인들은 독립운동 전선의 통일과 강화를 위해 호놀룰루에서 ‘해외한족대회’를 열었다. 해외한족대회에서는 독립운동 전선을 통일하고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라는 연합기관을 설치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1943년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3,000달러를 요청하였다. 이에 하와이의 대한부인구제회 중앙부에서 300달러를 제공하였는데, 김노디는 쌀 한 부대를 기부하였다.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1942년 1월 하와이 군정부는 치안부를 설치했는데, 하와이 한인사회는 미국의 국방을 후원하기 위해 ‘한인반집행위원회’를 조직하였다. 한인반집행위원회는 하와이 군정부가 선정한 10인의 집행위원을 두었는데, 전경무가 위원장, 김노디는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김노디는 1944년 2월 1일부터 15일까지 호놀룰루 포트 스트리트에 전시공채발매 임시부를 설치했고, 미국의 전시공채를 판매하여 국방 후원에 동참하였다.

하와이의 대표적인 한인여성단체인 대한부인구제회의 학무(1926~1927), 외교(1927~1928, 1935~1938, 1942~1944), 중앙부장(1929~1931, 1939~1940, 1945), 재무(1935~1938) 등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에는 국내에 들어와 1953년 11월 24일 외자구매처장에 임명되어 1955년 8월까지 재직하였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독립의연, 부인구제회 의무금, 외교비, 독립특연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납부하였다. 1972년 5월 28일에 사망하여 하와이 호놀룰루 오아후 묘지에 묻혔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한민보(新韓民報)(1919. 5. 8, 1920. 6. 4, 1921. 3. 17, 3. 24, 1923. 7. 5, 1924. 1. 31, 8. 21, 8. 28, 11. 13, 1925. 1. 8, 1926. 2. 18, 1930. 10. 9, 10. 21, 1935. 10. 31, 11. 14)
  • 태평양주보(太平洋週報)(1938. 4. 30, 10. 8, 1939. 5. 27, 10. 21, 1940. 3. 9, 4. 13, 10. 19, 1941. 3. 8)
  • 독립(獨立)(1944. 8. 26)
  • 우남이승만문서 동문편(우남이승만문서편찬위원회, 1998) 제12권 400~473면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외소재 미국 하와이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김노디(관리번호:956753)
*오류 제목
*오류 유형
*오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