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경상남도 김해군의 주민 50~60명은 3월 29일 읍내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3월 30일 읍내의 김해군청 앞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주도한 것은 바로 구명순이었다.
구명순은 정신여학교 학생으로 서울에서 3.1운동을 목격했다. 그녀는 3월 22일 고향인 김해군으로 내려왔다. 3월 30일 김해읍내 예배당에서 귀가하던 중에 박덕수(朴德守) 등 여러 명의 부녀자들을 만나 만세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공감한 인사들은 오후 9시경 김해군청 앞에 집결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가두시위를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구명순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9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했다.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