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29년 11월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光州)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전국의 각 학교에서 동조시위가 전개되었다. 1930년 1월 서울에서도 남녀학생들이 연합시위운동을 추진하였다. 각 남녀학교 학생들이 모임을 가지고 1월 15일 오전 9시 30분 일제히 시위를 개시했다.
당시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梨花女子高等普通學校)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찬묘도 이 시위에 적극 참여했고, 자신의 기숙사 방을 논의 장소로 제공하였다. 1월 14일 최복순(崔福順) 등과 역할 분담 등 최종적인 시위방안을 결정했다. 시위 당일인 1월 15일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격문을 배포하며 만세시위운동을 이어갔다. 그로 인하여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2월 10일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1. 31, 2. 11)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2. 11)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2) 제51권 76~77, 79, 85, 92면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2) 제52권 51, 95~97면
- 한국민족해방운동사자료집(김경일, 1992) 제10권 39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