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8년 말부터 국내에서는 학생·종교단체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독립운동이 계획되고 있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기독교계의 박희도는 1월 하순 각 전문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중 대표가 될 만한 청년들을 관수동에 있는 음식점 대관원(大觀園)으로 초청하여 독립운동을 방안을 협의하였다.
배화여학교 교사 윤화정은 이 자리에 참석하여 학생들과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했다. 1919년 3월 1일 2시 무렵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이에 가담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서울 남대문로, 정동 미국영사관 앞 등을 행진하며 만세를 불렀다. 조선총독부를 향하던 시위대는 충무로에서 막혔는데 군중이 계속 늘어나자 일제는 보병 3개 중대와 기병 1개 소대를 시내 주요 지점에 배치하여 만세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체포하였다.
체포된 윤화정은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7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1919. 11. 6)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17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