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군(光州郡)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호응하여 전국의 학생들이 동조시위와 동맹휴학으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1월 서울에서도 20여 개 여학교와 남학교의 학생들이 연합시위운동을 추진하였다. 각 학교 대표자들은 사전협의를 통해 1월 15일 일제히 만세시위를 일으킨 후 종로네거리에 모여 연합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서울의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양원숙은 1월 10일 4학년의 최복순(崔福順) 등과 시위운동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연일 모임을 갖고 시위운동의 방안을 협의하였다. 교내에 중앙본부를 설치하여 4학년생이 책임을 맡고, 3학년생은 실무를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양원숙은 3학년 B조의 대표자로 선임되어 최복순으로부터 태극기와 격문 제작을 의뢰받았다. 1월 14일 기숙사에서 학우들과 태극기 백여 장과 격문 백여 매를 제작하였다. 양원숙은 최현수(崔賢守) 등과 작은 태극기를 만들고 격문을 필사하는 등 시위준비에 앞장섰다. ‘식민지교육정책을 폐지하라’ 등의 요구사항을 기재한 큰 기(旗)도 준비하였다.
이튿날 1월 15일 학생들은 교정에 모여 태극기를 흔들고 ‘구속학생 석방’, ‘제국주의 타도만세’, ‘독립만세’ 등의 구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였으나 경찰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양원숙은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25일간 고초를 겪은 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1. 31, 2. 11)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1. 31, 2. 10, 2. 11)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1. 30, 1. 31, 2. 11)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1. 31)
- 한국민족해방운동사자료집(김경일, 1993) 제10권 391면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2) 제51권 76~106, 109, 154~157, 259, 339~365, 369, 412~415, 512면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2) 제52권 61~65, 197, 319~323, 450~451면
- 기려수필(騎驢隨筆)(송상도, 1955) 41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5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