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흥군 천도교구에 독립선언서 750매가 전달되어 군내 및 인근 천도교구에 배포되었다. 도면에서는 3월 9일 능리(陵里)의 기독교인 약 15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또한 장날인 3월 10일 오전 9시부터 모이기 시작한 송화리(松花里)‧국대리(菊垈里)‧두무리 주민들, 그리고 소사면(所沙面) 방곡리(防谷里)의 교인들과 학생들이 능리 시장으로 집결하였다. 이렇게 모인 군중들은 오후 2시 만세운동을 개시하였다. 구성필은 김두익(金斗益)・김원(金元) 등과 함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오후 4시에는 약 200여 명의 군중이 결집하여 면사무소‧헌병주재소 등을 돌며 만세시위를 하였다. 두무리에 거주하던 구성필은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5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아 공소하였다. 6월 1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감옥(平壤監獄) 금산포출장소(金山浦出張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징역 10월 9일로 감형되어 4월 2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 : 1919. 6. 19)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259~2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