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19년 3월 6일에 평양(平壤) 숭실학교(崇實學校) 학생인 김무생(金武生)이 서울을 거쳐 3월 7일 대구에 도착했다. 그는 대구 남산정(南山町) 신명여학교(信明女學校)에 가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독립운동 상황을 전달하고 만세시위 참가를 권유했다.
이에 3월 8일 아침 7~800명의 군중들이 시장을 떠나 본정(本町)‧경정(京町)을 거쳐 동성정(東城町)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다. 신명여학교 학생의 경우 최정술 등은 서문시장에서, 이영현 등은 동산교 근처에서, 기숙사생들은 교내에서 만세를 외쳤다. 신명여학교 학생이던 정봉은도 그러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로 인하여 경찰에 체포되어 검사의 신문을 받고 3월 9일 대구감옥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3월 29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에 대한 기소유예 결정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독립운동사獨立運動史(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269~27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