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4월 초 용궁면 읍부리 용궁공립보통학교(龍宮普通學校)에 재학중이었던 정진완(鄭鎭琬)·이구성(李九成) 등은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다. 이들은 4월 12일 용궁읍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박희만은 당시 풍양면(豊壤面) 괴당동(槐堂洞)에 거주하고 있었다. 학생이었던 그도 만세운동 사전 준비 작업에 참여했다. 박희만 등은 사전에 태극기를 제작하며 만세운동을 준비해 나갔지만, 일본인 교사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일본인 교사들은 헌병대에 신고했으며, 박희만 등은 붙잡혔다. 4월 17일 예천헌병분대(禮泉憲兵分隊)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3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 1919. 4. 29)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420~4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