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부여군 3.1만세시위는 3월 2일 김태호가 논산에서 「독립선언서」 한 묶음을 천도교구실로 가져 오면서 시작되었다. 김태호는 김종석·황우열·박성요·이범인·최규석 6명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며, 배포를 부탁하였다. 이들 가운데 황우열은 3월 3일 「독립선언서」를 부여 왕포리의 조원상에게 전달하였다. 이를 받은 조원상은 그 가운데 3매를 다시 석성면 현북리의 김덕빈에게 전달하였다.
뜻을 같이한 김덕빈은 「독립선언서」 2매를 염창리 길가에서 배포하고, 1매는 신암리의 강면기(姜勉基)에게 전달하였다. 이일로 3월 13일 체포된 김덕빈은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60도(度)를 선고받고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1919. 4. 4)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