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최만성의 숙부가 태평양전쟁에서 사망했다. 그는 이를 일본의 ‘내선(內鮮)’ 차별 때문이라 생각하며 민족의식을 키워갔다. 1944년 3월 11일 정오쯤 전라남도 광산군 서방면(西坊面) 문흥리(文興里) 김주호(金周浩)의 집에서 이 지역으로 근로 동원된 광주사범학교(光州師範學校) 심상과 4학년생 전중환섭(田中桓燮) 외 7명에게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일본이 결국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하였다.
이 일로 이른바 ‘육해군(陸海軍)의 군사(軍事)에 관한 조언비어(造言飛語)’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4~5월경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4년 6월 8일 약식명령(略式命令)으로 재판을 받았다. 이른바 ‘육군형법(陸軍刑法) 및 해군형법(海軍刑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정식재판(定式裁判) 청구를 포기하고 광주형무소(光州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12월 8일에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판결문(判決文)(1944.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