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7월 경기 수원군에서 수원청년동맹 임시집행부 의장으로 활동하고, 1929년 7월 수원청년동맹과 신간회 수원지회 연합만찬과 관련하여 체포되었으며, 동년 8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수원지부 위원, 수원노동조합임시집행부 서기, 수원청년동맹 교양부장으로 활동하고, 12월 신간회 수원지회 행사에 간여함.
1932년 1월 일본 동경에서 일본공산당 전협토건성북 (城北) 지구 소속으로 성북실업자단체협의회준비회 결성을 주도하고, 동년 5월경 일본공산당 강동지구 가두세포 책임자가 되었으며, 7월 재판중인 일본공산당 간부 좌야학 (佐野學) 의 탈출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6년을 받음.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1932년 1월 일본 동경에서 일본공산당 전협토건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경기도(京畿道) 수원군(水原郡) 출신으로 1927년 7월 21일 수원군 수원청년동맹 임시집행부 의장과 대회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9년 7월 22일 수원청년동맹과 신간회 수원지회와 관련으로 체포되었고, 8월 12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수원지부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8월 25일 수원청년동맹 제1회 정기대회에서 교양부장에 선출되었다.
1930년대부터 일본으로 이동하여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1932년 1월 도쿄(東京)에서 일본공산당 전협토건(全協土建) 성북지구(城北地區) 소속으로 성북실업자단체협의회준비회(城北失業者團體協議會準備會)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 4월 20일 박노옥(朴魯玉) 등 11명과 함께 북부지당대회를 개최하여 메이데이(노동자의 날) 투쟁 등 5개 항목의 투쟁 목표를 결정하였다.
같은 해 5월경 일본공산당 강동지구 가두세포 책임자가 되었다. 이후 일본공산당 간부 사노 마나부(佐野學)의 탈출을 위해 동경시위원회 조직으로부터 권총 5정을 받았다. 이러한 계획이 발각되어 7월 24일 도쿄 경시청에 13명의 동료와 함께 체포되었다. 1933년 7월 12일 도쿄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1934년 도쿄공소원(東京控訴院)에서 징역 6년을 최종 선고받아 토요타마형무소(豊多麻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일보(朝鮮日報)(1927. 7. 24, 1929. 8. 28, 12. 24, 1933. 1. 19)
- 중외일보(中外日報)(1929. 2. 15)
- 동아일보(東亞日報)(1929. 7. 25, 8. 17, 8. 24)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3. 7. 28, 1935. 1. 15)
- 소화특고탄압사(昭和特高彈壓史)(明石博隆‧松浦總三 共編, 1975) 제6권 69∼70면
- 사상휘보(思想彙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1939.6) 제19호 266∼267면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