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31년 8월에서 12월 사이 김서호(金瑞鎬)·장태봉(張泰奉)·김태연(金泰淵) 등과 함께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일명 전협(全協)에 가입하고 세포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듬해 전협 출판 오사카시 신문반(新聞班) 조직부(組織部)에서 책임자로 활동하던 중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1934년 9월 15일 오사카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을 이유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이후 오사카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5년 출옥하였다.
1941년 12월 7일 일제가 진주만공격을 감행하고,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에 일제는 같은 해 12월 9일 일본 내 민족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등을 전개한 주요한 인물들을 이른바 ‘사상분자’로 분류하고, 동향 감시를 위한 비상조치를 감행하였는데, 이때 다시 한번 체포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4)
- 특고월보(特高月報)(1941. 12)
- 조총련연구(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1972) 제1권 251, 256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3(2)권 865면
- 소화특고탄압사(昭和特高彈壓史)(1990, 고려서림) 174~1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