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1월 미국 하와이에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재무, 동년 7월 대한인국민회 카이묵기지방회 발기인,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재무부 독립금재무 및 동회 참가 애국부인회 대표원, 12월경 애국부인회 회장, 1945년 대한부인구제회 호놀룰루지방 대표원 및 특연금 수봉위원, 미상시기 중한민중동맹단 회원 등으로 활동함.
1944년 4월 재미한인사회의 단결과 독립운동 연대를 촉구하는 글을 『국민보』에 게재하고, 동년 5월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수정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축하대회 준비위원회 운영을 주도함.
1919∼1945년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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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4월 재미한인사회의 단결과 독립운동 연대를 촉구하는 글을 『국민보』에 게재하고, 동년 5월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수정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축하대회 준비위원회 운영을 주도함.
1919∼1945년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경상남도(慶尙南道) 마산부(馬山府) 출신으로 1910년 사진신부로 하와이에 이주했다. 고덕화(高德化)와 결혼한 후에는 ‘고공도’로도 불렀다. 하와이 근영학교 교사로 동포들에게 국어를 교육했다. 1941년 2월 호놀룰루에서 정순덕 등과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를 창립하고 1944년 회장에 선출되었다.
대한애국부인회에서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에 김공도와 정순덕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1944년 1월 12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의 임원 선거에서 김공도가 재무 담당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9월 24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의 조직이 강화되면서 김공도가 독립금 재무 업무를 전담했다. 동시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중한민중동맹단에 참여했다.
1944년 7월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카이무키지방회 신설 발기인으로 참가하였다. 같은 해 10월 15일 대한부인구제회 호놀룰루지방회에서 대표원으로 선출되었고, 1945년 1월 27일 대한부인구제회 제25차 대표회에도 호놀룰루지방 대표로 참석했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의무금‧인구세‧애국금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지원했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국민보(國民報)(1914. 1. 7, 6. 10, 1937. 5. 5, 11. 10, 1938. 3. 2, 1944. 1. 12, 1. 26, 3. 1, 3. 2, 3. 8, 4. 5. 3, 5, 5. 17, 5. 24, 7. 19, 9. 20, 9. 27, 10. 11, 10. 18, 10. 19, 10. 25, 12. 6, 12. 13, 1945. 1. 10, 1. 31, 4. 4, 4. 7, 7. 18)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3권 3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