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함경북도(咸鏡北道) 회령군(會寧郡)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7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간도대한국민회(間島大韓國民會)에 가입하였다. 간도대한국민회는 1919년 길림성 연길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산하에 지방총회와 지회를 두었다.
구자현은 남부총회 예하 제1남지방부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제1남지방부 요원은 구자현 외에도 경호부장 장성순(張成順), 지방부 송언지회(松堰支會) 경호원 강기운(姜基云), 주북지회(朱北支會) 모연대원 유봉춘(兪鳳春), 동부사북지회(東部沙北支會) 간사 박사현(朴駟鉉), 동부송은지회의 통신원 겸 경호원 고진홍(高鎭洪), 동부 사북지회의 경호원 이용학(李龍學) 등이 소속되었다.
제1남지방부 경호부장 장성순은 1920년 7월경 길림성 화룡현에서 독립군 40명을 모집하여 국민회 본부로 보냈다. 같은 해 음력 8월 5일경 구자현은 강기운과 화룡현 사대사(四對社) 사기동(砂器洞) 자함박막동(字咸朴幕洞)에 일제 밀정으로 처단된 김덕기(金德基)를 매장할 장소를 정찰했다. 이어서 대한국민회 제1남지방부 통신원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년 12월 19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제령(制令) 제7호 위반‧절도’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그에 따라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11. 9)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12. 7)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 : 1922. 4. 24)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