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평안남도(平安南道) 영원군(寧遠郡) 온화면(溫和面) 온양리(溫陽里)에서 태어났다. 1921년 5월 6일 채원개(蔡元凱)와 결혼했다. 채원개는 1923년 6월 낙양군관학교 기병과에 입학해 군사학을 배우고, 1927년 황포군관학교 교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34년 한국독립당 광동지부에 가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했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 참모처장, 1943년 7월 총무처장, 1944년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김병일은 남편 채원개를 도와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임시정부 요원 가족들과 함께 중국 충칭으로 이동하였다. 1943년 5월 8일 충칭에서 개최된 한국독립당 제3차 전당대표대회에서 ‘각 당파의 통일 혹은 연합 방식으로 혁명진선을 공고히 하는 안’을 결의하였다. 한국독립당 중앙조직부(中央組織部) 제2구 당원으로 참여하였다. 해방 이후 귀국하여 1971년 6월 5일 별세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제적부(除籍簿)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94) 제27권 103~106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8) 제34권 231, 365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11) 제44권 3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