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이를 지지하는 동조 맹휴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1929년 12월 서울의 각 중등학교에서도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각 학교의 학생대표들은 사전에 개별 학교 단위로 시위를 벌인 후 종로에 집결하여 연합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강상덕은 12월 8일 심홍택(沈弘澤)·강대성(姜大成) 등의 학우들과 동맹휴학과 시위운동계획을 협의하였다. 이들은 학우이자 조선학생전위동맹(朝鮮學生前衛同盟) 간부인 김순희(金淳熙)의 지도로 광주에서 검거된 학생의 석방과 식민지교육 철폐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였다.
이튿날 12월 9일 이들은 진정서를 교장에게 제출하고 시위를 전개했다. 강상덕 등 학생들은 9시 조회시간에 광주진상보고 연설을 마친 후 “조선학생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갔다. 시위대는 제2고등보통학교(第2高等普通學校) 학생들과 합류하여 종로네거리로 진출할 계획이었으나 경복궁 뒤 경무대 앞에서 경찰에 저지되고 말았다. 그는 이일로 체포되어 2개월간 고초를 겪었으며 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29. 12. 28 호외, 1930. 2. 9, 2. 10)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2) 제52권 40~43, 140~1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