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동조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퍼져갔다. 1930년 1월 서울에서도 20여 개교에 달하는 각급 여학교와 남학교의 연합시위운동이 추진되었다. 당시 근화여학교 고등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오형만은 1월 14일 김순례(金順禮) 등과 학교를 대표하여 시위운동 방법을 논의했다. 이들은 1월 15일 오전 9시 30분 각 학교에서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종로 네거리에 집결한 후 ‘연합시위운동’을 벌이기로 약정하였다.
1월 15일 약속된 시간에 3백여 명의 학생들은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교문 밖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실패하고 말았다. 학생들은 교문 담장을 부수며 교외 진출을 시도하였다. 경찰의 저지로 실패하자 학생들은 교실 유리창을 파괴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실신하기도 하였다. 오형만은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구류 20일과 정학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퇴정학생도(退停學生徒)의 처분표(處分表)에 관한 건(경기도경찰부장 : 1930. 6. 9)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2) 제52권 211~214, 465~46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