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서울의 사립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1년 7월 초 홍병모(洪炳模)·김만유(金萬有)·이동재(李銅材) 등을 중심으로 한 서울 시내 중등학교의 연합 맹휴(盟休) 계획의 실행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격문(檄文) 2,300여 매를 제작하여 각 중등학교에 배분하였으며, 10일을 기하여 일제히 맹휴를 단행하고 가두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격문의 내용은 2일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춘현(長春縣)에서 일어난 ‘만보산(萬寶山) 사건’ 등 일제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갑문은 7일 안국동(安國洞) 자택으로 방문한 홍병모와 김만유로부터 그러한 내용이 담긴 서신과 격문 한 꾸러미를 건네받고, 격문의 배포와 맹휴 계획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8일 이른 아침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내 각 교실에 격문을 배포하였다.
이와 같은 서울 시내 각 학교의 ‘반제격문(反帝檄文) 사건’으로 다수의 학생들이 검거되었는데, 이갑문도 이때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종로경찰서(鍾路警察署) 고등계(高等係)에서 오랜 기간 취조를 받은 후 1932년 6월 6일 홍병모 등 6명의 동지들과 함께 검찰로 송치되었다. 7월 16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18일 출옥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이재유(李載裕) 그룹’의 혁명적 대중조직운동에 참여하였다. 1934년 6월, 자신의 연인이자 ‘이재유 그룹’에서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을 주도하던 핵심 활동가인 박영출(朴英出)에게, ‘경성반제동맹(京城反帝同盟)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3월 31일 병보석으로 가출옥한 이관술(李觀述)을 소개하였다. 이후 이관술의 지도 아래 윤금자(尹錦子) 등 주로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출신들과 실천운동에 대해 협의하면서 이관술의 연락원(連絡員)으로 활동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박영출 등의 ‘용산적색노동조합(龍山赤色勞動組合) 사건’에 연루되어 1935년 용산경찰서(龍山警察署)에 체포되었다. 3월 13일 박영출 등 1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송치되었다가, 23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 기소유예(起訴猶豫)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사상(思想)에 관한 정보철(情報綴)(3)
- 치안정황(治安情況)(1934. 3)
- 경찰상보(警察狀報)(1935)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 6. 7, 6. 18, 7. 15, 7. 19, 1936. 7. 16)
- 조선일보(朝鮮日報)(1936.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