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경상남도 진주(晉州)의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一新女子高等普通學校)를 중퇴(中退)했다. 1930년 가을경부터 부산진(釜山鎭)의 조선방직회사(朝鮮紡織會社)에 직공으로 근무하면서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1931년 5월 초순경 고광한(高光翰) 등이 주도한 ‘격문(檄文) 사건’에 연루되어 부산경찰서(釜山警察署) 고등계(高等係)에 체포되었다. 경찰의 취조에도 끝까지 침묵을 지키다가 같은 달 27일 석방되었다.
출옥 후 같은 하동 출신으로서 함께 부산의 조선방직회사 직공으로 활동한 제영순과 함께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로 옮겨서 활동하였다. 1931년 7월 25일 대구에서 같은 하동 출신의 권대형(權大衡) 등이 조직한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에 참여하였다. 권대형과 서인식(徐寅植) 등이 발간한 기관지 『봉화(烽火)』·『코뮤니스트』 등의 출판물을 배포하고 전매국(專賣局)이나 고무공장 등에서 동지를 규합하는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에 연루되어 경상북도경찰부 고등과(高等科)에 체포되어,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송치되었다. 1932년 7월 21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에서 기소유예(起訴猶豫)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31. 5. 12, 5. 14, 5. 22, 5. 30, 7. 10, 1933. 12. 11)
- 매일신보(每日申報)(1931. 5. 13, 1932. 7. 10, 7. 23)
- 조선일보(朝鮮日報)(1932. 7. 24)